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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창의대장 민긍호 묘소 /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산 5-8 민긍호 의병장의 본관은 여흥이며, 1865년(고종 2) 아버지 민치봉과 어머니 원주원씨의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민긍호 의병장은 인품이 강직하고 공사가 분명하여 부하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군대 통솔에 탁월하여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민긍호 의병장은 1897년 원주진위대 고성분견대에 입대하여 하사가 된 후 1900년에 정교로 진급되어 춘천분견대 소속이었다가 다시 1901년 특무정교로 발탁되어 원주진위대에서 근무하던 중, 일제가 원주진위대를 해산하려 하자 원주의 장날인 1907년 8월 5일 약 30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민긍호 의병장은 원주진위대의 무기고를 열어 1,600여정의 소총과 탄약을 꺼내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읍민들을 규합하여 1,000여명의 병력으로 4개 부대를 편성한 뒤, 원주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을 습격하여 원주읍을 장악하였다. 그 뒤 익병부대를 많은 소단위의 의병부대로 재편성하여, 제천.죽산.장호원.여주.홍천 등지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여 용맹을 떨쳤다. 민긍호 의병장이 거느린 의병부대는 단위부대로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투력이 강했던 의병부대로 경기도 충청도.경상도로 이동하면서 모두 100여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1908년 2월 29일 일본군과 접전했을 때, 의병 20여명이 사살되고 민긍호 의병장은 사로 잡혀 강림으로 호송되었다. 그날밤 부하 60여명이 강림을 습격해 탈출하려 하다가 사살되어 4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이러한 민긍호 의병장의 활약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근대민족운동의 횃불이 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민긍호 의병장의 묘소는 본래 원주 하평동(下洞里, 지금의 평원동)에 있었으나, 1939년 흥업면 무실리로 옮겨졌던 것을 1954년 5월 북부지구 경비사령관 권준 장군이 다시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2013년 10월 묘역정비 공사를 실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