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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로 한글학자 1893~1978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과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역임한 한글학자. 1910년 5월부터 1912년 4월까지 2년간 상남동에서 지냈다. 의령 지정면 두곡리 집을 떠나 마산으로 와서 창신학교 초등과와 고등과를 1년씩 다녔다. 새벽마다 말죽을 끓이고 여관을 다니며 인단을 파는 등 고학하였다. 서간도-상해-베를린-귀국 후 조선어사전 편찬으로 이어진 그는 고투는 마산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6년 형을 받고 함흥형무소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 한글연구로 민족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월북자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외면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