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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州李公基碩殉兄義蹟碑 義蹟碑銘 李君基碩殉兄之 又明年夏鄕人士將立石以褒 其義屬余爲銘余添在鄕友不可以老昏辭銘曰 君有賢兄其名基守 君爲賢弟老愈篤友 嗟歲庚寅國有大亂 彈雨爆雷天旋地轉 人名逃生惴惴慄慄 雖有兄弟亦皆相失 惟君衆族咸集亭堂 兄抱先籍追後倉黃 纔未及半中彈惻地 君時望見愕然膽墜 卽欲赴難子婦泣諫 厲聲叱退奮身冒彈 忽被飛彈殉于兄側 卓哉基碩萬夫之特 義則以立倫焉以明 倫明義立百世猶生 鄕有公評褒君樹碑 凡爲人弟視此銘辭 歲壬辰扐月上浣全州李康瑄撰 출처 : 다음블로그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전면 곡안리의 성주 이기석 의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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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 성주이공기석순형의적비 이기석(李基碩)이 형을 구해내려다 죽은 그 다음해에 고을의 인사(人士)들이 장차 비를 세워 그 절의(節義)를 칭송하고자 하였는데 나에게 그 명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보잘 것 없는 내가 고향친구 축에 드는지라 나이 많고 정신이 흐릿하다하여 사양할 수가 없었다. 명(銘)은 이러하다 아아 경인년(庚寅年)에 나라에 큰 난리가 있어 빗발 같은 총알에다 우레 같은 포탄으로 하늘이 빙빙도는 듯 지축이 흔들리는 듯 목숨을 보전하러 사람들 피난할 때 가슴은 두근두근 다리는 벌벌, 비록 형제 있다 하나 피날 길에 서로 흩어졌다네. 오직 그대 집안사람들만 선조의 재실에 모두 모여 들었다. 네 조상의 문적(文籍) 끌어안은 그대 형을 뒤쫓아서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지. 반쯤도 못 왔을제 포탄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네. 바라보던 그대 그때에 놀라 간담이 다 떨어졌지. 곧바로 구하려고 달려가려 하자 며느리 울면서 만류했네. 엄한 목소리로 꾸짖어 물리치고 포탄을 무릎 쓰고 몸을 떨쳐나섰네. 눈 깜짝 새 날라 온 포탄을 뒤집어쓰고서 형 곁에서 따라 죽었네, 훌륭하도다. 기석(基碩)이여 많은 장부(丈夫) 가운데서 우뚝하도다. 그대로 인하여 의리가 서게 되었고 인륜(人倫)이 밝아지게 되었도다. 의리 세우고 인륜 세웠으니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도다. 고을에 공정한 평이 있어 그대 기리고자 비를 세운다네. 무릇 남의 아우된 사람들이어 지나며 이글을 새겨 볼 지어다. 임진(壬辰, 1952)년 윤5월 상순에 전주 이강선(全州 李康瑄)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