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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跡碑銘 李君基碩이 兄을 구해냐려다가 죽은 그 다음 해에 고을의 人士들이 장차 碑를 세워 그 節義를 칭송하고자 하였는데 나에게 그 銘을 지어다라고 부탁했다 보잘것 없는 내가 고향친구 츅에 드는지라 나이 많고 정신이 흐릿하다하여 사양할 수가 없었다. 銘은 이러하다. 그대에게 어진 형님 계셨으니성함이 基守(기수)였네 그대 어진 아우되어 아아 경인년(庚寅年)에 나라에 큰 난리가 있어 빗발 같은 총알에다 우레 같은 포탄으로 하늘이 빙빙도는 듯 지축이 흔들리는 듯 목숨을 보전하러 사람들 피난할 때 가슴은 두근두근 다리는 벌벌, 비록 형제 있다 하나 피날 길에 서로 흩어졌다네. 오직 그대 집안사람들만 선조의 재실에 모두 모여 들었다. 네 조상의 문적(文籍) 끌어안은 그대 형을 뒤쫓아서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지. 반쯤도 못 왔을제 포탄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네. 바라보던 그대 그때에 놀라 간담이 다 떨어졌지. 곧바로 구하려고 달려가려 하자 며느리 울면서 만류했네. 엄한 목소리로 꾸짖어 물리치고 포탄을 무릎 쓰고 몸을 떨쳐나섰네. 눈 깜짝 새 날라 온 포탄을 뒤집어쓰고서 형 곁에서 따라 죽었네, 훌륭하도다. 기석(基碩)이여 많은 장부(丈夫) 가운데서 우뚝하도다. 그대로 인하여 의리가 서게 되었고 인륜(人倫)이 밝아지게 되었도다. 의리 세우고 인륜 세웠으니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도다. 고을에 공정한 평이 있어 그대 기리고자 비를 세운다네. 무릇 남의 아우된 사람들이어 지나며 이글을 새겨 볼 지어다. 임진(壬辰, 1952)년 윤5월 상순에 전주 이강선(全州 李康瑄)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