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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뜬다음날까지 이어졌고,독립을요구히는함성이 인근미을 까지 파급되자일본경찰은시위 진압에 나섰다. 이때 김종환은봉지들과함 께 피체되었다 이날 시위로 김종환은 1919년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호L을 추서하였다. 註 · 判決文(京城ttl!.方法院, 1919. 4. 29).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6. 27). · 獨효i뿔행l史(國家챔짧b잃) 第2卷, 138而. · I힘陽감6誌(高陽部誌쩌괴흉委員會, 1987), 271때‘ · 京繼道抗 日獨立述파!J~(京짧道, 1995), 413面, 문창호文昌鎬 훈격 대통령표창 (2011) (양) 1883. 1. 20.∼ 고양 짧옮 써짧鳥 文致三 집 1919년 3월 26일 밤 京識道 高陽휩B 西뚝섬(합島)에서 金完洙가;주도한 만세시 위에 참여하여 주민수백명과함께 朝蘇獨立萬歲”를 高唱하며 만세시위를전 개하다체포되어 徵;投 6月을받은사실이 확인됨. 고양군 둑도변 동둑도리 사람이다. 1919년 3월 26일 밤, 김완수金完洙의 주도 로동둑도束폈島와서둑도주민 수백 명이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를-벌였다. 이에 신원룡申元龍과 최자근통崔者규洞이 선두에서 군중을 지휘하며 한 곳으로 모으 려 하였으나, 일본헌병이 공포를쏘아군중을강제 해산시켰다. 씨때 김완수는 ‘공포다. 도망가지 말라’고소리치며 군중을다시 모았으나이미 웬제 경찰에 의 해다 수가체포되었다. 문창호도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붙잡혀 1919년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 부록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