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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성사는 6월 28일 밤 11시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계속 천도교의 인쇄 출판 일을 꾸려갔다. 1920년 5월 11일 징효근은 천도교의 서울과 경기지역을 총팔하는 경성대교 구교구장에 임명되어 포교와신도 의 구흘과함께부인강습소틀설립하여 여성 교육에 힘썼다. 정효근은 1922년 3월 1일을 기하여 보성사 직원들과 천도교인 이 중심이 되어 서울 시민과 함께 지]2의 3 . l운동을 일으키그l자 이종일 등과 함께 「자주독립선언문」을작성하고비밀리에 시위준비를하던중 2월 27일 거 사직전에 일본 형사에게 발각되어 뭇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5년 3월 이후 경 기도고양군 지도면행주내리로와동학사상을가르치는 서당을열었으며,소 작농민들을 위하여 1925년 소작료를 3할 이내로 인하하도록지주들을 설득하 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29년에는 지도공협보통학교 설립에 앞장섰으며, 1931 년에는 행주대첩꾀 권율장군을 기리는사당인 행주기공사幸州紀功祝 수리 사업 에도앞장섰다. 장효근은 1916년부터 1946년 세상을 더날 무렵까지 30년간 일기를 써서 남 겨 귀중한자료가 되게 하였다. 『동암일기』는6 . 25때 장남장부환張富煥이 땅 에 묻어놓고피난했는데, 다행히 집이 불에 탔음에도일기를비롯한유품은보 존되어 독립기념판이 건립되자기증되었다. 정부에서는고인띄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짜였다. 훈I: . 호F국신문사, 85 . 118 . 171∼173쪽‘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55∼57쪽. 흩훨펜-- 정듀느순鄭武淳 훈격 애족장 (1990) 1864.∼미상 고양군 숭인면 회기 리 11번지가 본적과 주소인 사람으로, 1919년 만주 관전 494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