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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양국은일본의 강력한항의에 따라이를거절하였다. 의병 진영에서는 여 기에굴하지않고있는재력을쏟아무기상을통하여총기를구입하는한편, 교 포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를 거두어 무장하였다. 1908년 이들은 연추를 후방 기지로 하고 노 • 만국경露滿돼휠에 위치한 합습 미구哈什퍼밟를 전초 기지로 하여 국내 침공작전을 개시하였다 총대장은 이범 윤이었고, 군자금을댄사람은최재형崔在亨 이었다. 최재형은경홍찢興 출신이 나 처음 빈손으로 연해주로 이주하여 돈을 모아 연추굴지의 부호가 된 사람으 로블라디보스톡의 부호 최봉준崔鳳俊과쌍벽을 이룬사람이었다. 이범윤은 처 음노령으로망명하여 연추에서 최재형이 세운학교의 교사로있었으며 거의한 후에도 계속 최재형의 재정적 후원을 받았다. 1908년 4월 이후 산발적으로 도 강 작전과 정찰훨동을 시도한 이범윤 의병부대는 여름부터 본격적인 국내 침 공작전을감행하기 시작하였다. 작전방법은부대를 1백 명 내외의 소단위 부대 로 나누어 일군 수비대의 경비가 허술한 지점을 택하여 산발적으로 도강 상륙 하고, 이와같이 국내 침입에 성공한각부대는갑산甲山 • 무산많山 둥예정된 지점에 집결하여 장기적이며 항국적인 국내 항쟁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1908 년 여름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한의병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정확한 숫자 는 알 수 없으나 7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10월에 이르러 대규모의 기습공격이 감행되었다. 대체로550명의 의병이 이에 참여하였다. 이 들은 한편으로는 두만강 연안의 일군 수비대를 공격하면서 힌편 이미 국내로 침투한 의병들로 하여금 후방 지대를 교란케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즉 9월 23일 이범윤 부대의 경홍 일대 출몰을 보도한 『대한매일신보』 는 10월 17일 길 주吉州 동남방화대리花뚫·뿔에서 의병 50명이 성진城발 일군수비대외-교전한것 을보도하였고, 10월 15일에도약50명의 의병이 경성주재 일군헌병 및 경찰대 와교전을하였다. 이러한연해주 이범윤의병부대가감행한국내 침공작전은 일군을 크게 당황;하게 하였다. 일본은두만강 ‘· 압록강일대에 병력을집중적으로강화하는r 한편 외무성을 통하여 한국 의병의 무장 해제와 체포 • 송환을 러시아 딩국애 강력히 요구하 였다. 이범윤 의뱅 부대는 그 후에도 국내 침공작전에 몰두하였다 1909년에 44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