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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으나첫 발은불발씨었고, 두번째 던진 폭탄이 폭 발한 것이다. 근처에 사림이 없어 인명 손상은 없었 지만 건물 일부가 파괴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 의 총본산인조선총팍부에 대한폭탄공격이었던까 닭에, 만약폭탄의 위력이 더 컸으면, 엄청난타격을 입을수있었다는점에서 일제가받은충격이 컸다. 그러나폭탄을딘진사람은총독부관리들이 우왕좌 왕하는사이에 유유헤 총독부 청사를 빠져 나갔다 . 전 서울 시내에 비상경계밍F이 펼쳐졌으나오리무중 이었다. 대담무상하게 폭탄을 던지고 일본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뜨며 빠져나간 사람이김익상이다. 김익상은 1895년경기도고양군용강면공덕리에서 출생하였다. 평양숭실학 교를졸업하고 한 때 기독교 학교에서 잠시교편을 잡았다. 그의 푸친은 일본인 과 같이 재목장을 경영하다가자본금을 탕진해버려 가세가 기울었다. 서울에 와서 광성연초공사j없城煙草公司의 기계 감독으로 일하면서 김익상은 비행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1920년 6월 광성면초공사에서 만주 봉천에 지점을 설치하게 되자 그는 봉천 행을자청하여 만주j료전근하게 되었다. 비행사가될수있는좋은기회라생각 하고만주봉천으로가서회사동료종업원인송통휘宋東윈E와비행학교로가고 자잎담배를몰래매각한자금을가지고상하이로갔다.그러나뚱국내전으로 비행학교가 폐교되어 입학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의열단원 오성륜吳成뿜을 만나 함께 서양사람 ‘구이루드’가 경영하는 전차회사의 전차감독으보 취업했다. 김익상은베이징으로가서의열단장약산若山김원봉金元때을 딴나의열단에 가입하였다. 독립을 위해서는 피를 흘리며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데 공감 했기 때문이었다. 김익산은 자신이 나서 조선총독사이토 마코토짧願폈를 맡아서 죽이기로 결 심하고 폭탄 2개와권총두자루를 받아가지고, 1921년 9월 10알 베이징을 떠 나서울에도착하였따.그이튿날인 9월 12일전기수리공을가장짜고총독부에 김익삼 제4편 I 3 · 1운동 이후의 국 내외 독립운동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