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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경성부 원은동援恩洞 퉁지에서 여러차례의 회합을 가지고 임시정부를 지원 하기 위해 이 조직을 결성하였다. 목적은상해 임시정부와국내콸 연결하여 국 내 상황을 임시정부에 보고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쩡부에 전달하 는것,그리고각종 인쇄물을작성, 반포해 국내에 독립의 여론을조성하려는것 둥에있었다 임원진으로 총무에 이병철 · 안재홍, 간사장에 김홍식金뼈핸 • 김태규金泰圭, 외교부장에 고양군 연희변 연희리 출신으로세브란스병원 사무원으로 있었던 26세의 김연우金演祐, 외교특파원에 조용은趙짧없, 외교원에 조챙주 • 연병호, 편집원에 이의경李짧敬(이미록), 상해지부장에 송세호, 회령지부장에 나대화魔 大化, 대전지부장에 씨호숭 李浩承, 충주지부장에 윤우영尹宇榮이 선임되었다. 그 밖에 특별단원 정낙륜과 단원으로 용창헌龍昌憲 • 나창헌歸昌憲 • 이깅하 李康 夏 • 유홍환柳興煥 • 이경하李敬夏 • 유흥식柳興植 • 정석희鄭錫烈 • 정태영鄭泰 榮 • 얀우선安佑행 • 。1일선李日효 · 이종욱李웰耶 퉁이 있었다 청년외교단은 1919년 8월 상순 이종욱을상해에 파견해 독립운동자금 모금 액 550원을임시정부에전달하고외교사무를확장할것퉁의건씌서를전달하 였다 . 이에 국무총리 대리 안창호는감사장을 보내왔으며, 이병첼은 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崔갚亨 명의로 경기도 애국금수합위원에 임명되었다. 8월 28일에는 국치기념일을 상기시키기 위해 조용주가 기초한 ‘국치기념경 고문’과 이의경이 쓴 『외교시보』를 인쇄해 서울과 각지에 조직을- 통해 배포하 였다.그후유홍식은 6월에, 김홍식 · 이강하는9월에,김태규 · 유흥환 · 연병 호는 10월에, 정석희는 11월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위해 상하이로 갔고, 조용은 은 임시정부의 명에 따라파리로파견되었다. 이병철은주로기독교인과정신여학교출신 여성들이 중심이 펀 대한민국애 국부인회 제규칙을까초하고,특별회원으로서 수백원을 기증하는퉁지원을 하 였다. 대한애국부인회를 비밀리에 조사하던 경상북도경찰부에서 이병철 퉁의 활동을 탐지하여 그해 11월 하순, 김연우를 비롯한 이병철 • 안재홍 • 김홍 식 • 정태영 • 송세호 · 윤우영 · 안우선 · 이일선 퉁이 붙잡혔고 대한민국청 년외교단도 해체되었다. 2) 제4변 I 3 · 1운동 이후의 국내외 독립운동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