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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리 시위 | 3 월 22일합정리에서군중 30여 명이 시위 도중근처의 중국 인 가옥을 일본인 가옥으로 착각하여 파괴했으며, 이 때 3명의 주도자가 체포되 어검거되었다. 아현공립보통학교 졸업생 시위 3 월 23일 아현공립보통학교 졸업생들인 경성 중림동 김갑광金띠龍(16, 무직) 과 연희면 연희리 이유성찜천星09, 농업), 용강면 아현리 이태영주,/{;榮(무직), 정 수명鄭끊命(19, 점원), 홍순남洪Jl/fj男(19세 인쇄직공), 김재수金在洙(19세 인쇄직공), 이명옥(17, 농엽), 이상봉양上奉(17, 철공직), 이금롱李今龍(무직), 경성 공평동 조 진성趙‘鎭星(16‘ 인쇄직공) 동은 3월 23일 학교 졸업생 동창회에 참석하였다. 시위의 발단은 동창생들의 시운회 중에 김재수가 직원이 없는틈을 타서 교 직원실에서 다음날졸업식에 쓸과자 3개를훔쳤다는누명을쓰면서 비롯되었 다 이 학교 교장 미야시타宮下政興가 이태영을 불러 훈계하지-, 이태영이 이에 반발하는태도를보였다 . 이에교장은이태영의 엉덩이를구타하였다. 졸업생 에 대한교장의 괴밍징벌 행동에 다른졸업생들이 반발했다 이 소식이 동리에 알려지자, 동리 주민들 약 100여 명이 합세해 교사를포위하고 돌을 던져 교실 유리창 11장을 파손시켰다. 이 사건은 3 . 1운동의 기운이 잠꽉기를 거쳐 다시 금고양지역에서 일어난시점에서 민족차별적이며공정하지 끗한일본인 교장 에 대한졸업생과주민 다수의 반발로서, 이 시기에 보편적으보쌓여 있었던 민 중들의 항일의식음을보여준다. 홍순남과김재수는 1심에서 태형 90대를선고받 았으나, 항소하여 2심에서 징역3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32) 은평면 | 역촌리 시위 I 3월 22일 역촌리주민 40여명이 당재호뼈에올라가햇불시 위를 벌였다. 이 때 김춘수 *칸洙 • 홍춘기洪春꿇 • 김점성金點hlG • 김윤정iTl:il 펴 빠 • 문도치文펴:I} 퉁은 주도적으로 주민들의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32) 경성복심볍원, 「꽁순남 퉁 2인 판결문」 ‘ 1919. 7. 2 • . 244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