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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난지난 2월만해도고종황제에 대한이야기를믿지 않았다. 난그들에게 는고종황제를독살할 이유가 없다고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민병석 · 윤 덕영 일당이 고종황제의 마지막 처소였던 덕수궁을 일본인들어l게 팔아 넘 겼다. 난이제 二 L 얘기를 믿게 되었다 이 악당들은자기들호주머니를채우 기 위해서라면 물불안가리고뭐든지 할수 있는야비한놈들이다 7) 지방마다 주민힐은 흰 갓 을 쓰고 양반 · 유생 주도하에 황제의 죽음을 추도 하는 망곡식않哭式을 행하였다. 경북지방 1부 23군에서만 2307~소에서 밍곡식 이 거행되었고한군ms에 최소 10개소에서 추모행사 를 이루어진사실로미루어 볼 때 전국적인 국민 추모의 정서를 알 수 있다 . 서거 42일 만인 3월 3일로 국장 일이 결정되었다 국장일이 가까워 오자황제의 마지막길에 통참하기 위해 지 방에서 상경하는사람 들이 줄을 이었다. 멀리는 경남 • 전남지방으로부터 기차 를 타고 오는사람과 기차를 탈수 없는사람들은 밤새 육로로 걸어서도왔다. 교통이 불편한 지 역에서는 5∼6 명씩, 10여 명씩 단체로, 아니면 배를 타고 오는 사람도적지않았다. 1919년 3월 1일자조선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서는지금의 서울 역인 남대문역에 많은지방사람들이 서울로올라왔던상횡을 이렇게 보도하였다. 〈차편마다증가되는남대문역의 하차객〉 (2월) 27일부터는 정거장이 터진다, 이태왕 전하의 인산이 차차 임박하 여 오니까조선 전도의 각 지방사람은 이 성대한 인산을 배관할 차로 서울 서울 하 고 서울로만 오는데. 교통기관이 완전치 못한 지방에서는 오륙 명 씩, 십여 명씩 단체가되어 오는사람도있고또배를타고오는사람도적지 아니하여 그 수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기차를 이용하여 어제 경성 에 도착한사람은 참으로 많아서 남대문 정거장의 역원들은그야말로눈을 뜨지못하는모양이다 남대문정거장에서내리는보통승객으로말하면작 -) r윤치호 일기」 , 157쪽. 고양독립운동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