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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595 신석원 선생은 1881년 1월 12일 수산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이명으로 종휴, 숙현, 선호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1924년 음력 3월 밀양군 하남면에서 김찬규, 심기균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독립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지 김찬규는 1924년 음력 3월경 임시정부 파견원이라고 하는 김보현으로부터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명의로 '군정서 총국장'에 임명한다는 취지의 사령서를 얻었다. 이에 선생과 김찬규는 다수의 사령서를 만들고 배부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더불어 동지들을 규합할 것을 협의하였다. 1924년 7월 하순경 선생의 집에서 사령서 70매를 인쇄하고 신기균등 5명의 동지에게 나누어 주고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활동을 하다가 1925년 2월 대구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선생은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과 1926원 5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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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원(1881.1.12~1959.1.22) 애족장(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