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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589 임굉 선생은 1923년 2월 12일 송지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임병찬이다. 선생은 1940년 11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신분으로 교내 문예부 비밀문예지인 '반딧불'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37인 중의 한사람이다. 1941년 당시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선생은 그해 1월 밀양 출신 김영복을 비롯하여 동교생인 이무영, 이태길, 장세파, 최낙철 등과 함께 조국독립을 위한 실력배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연구회 회원들은 당시 국제성세를 분석하여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기 위해 실력을 양성해서 독립 후 각기 전문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학술연구를 표방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양하였고, 회의 운영을 위해 비밀엄수, 매월 10일 연구발표와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의 방침을 정하였다. 1941년 2월부터 3월까지 연구회는 여섯 차례의 모임을 갖고 활동및 결의사항을 추진하였고, 졸업 후에 각각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같은 해 4월에 함북 청진 천마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인족의식을 양양시키는 등 연구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비밀 문예지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선생도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하지만 옥중 생활 중 겪은 가혹한 고문으로 건강을 잃고 28세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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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굉(1923.2.12~1950.10.29) 애국장(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