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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성(1880.10.1~1925.6.9) 애족장(1995) 단장면 구천리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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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411 오학성 선생은 1880년 10월 1일 구천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표충사의 승려로서 1919년 4월 4일 단장면 용회동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0일 경 통도사의 말사인 표충사에 통도사 승려 5명이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뜻을 모으고, 선생을 비롯한 이장옥, 이찰수 등 50여 표충사 승려들은 표충사에서 치밀한 거사를 계획해 나갔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쳤던 사명대사의 호국충정의 정신이 더 높은 표충사는 절이름도 사명대사의 시호인 표충을 따름으로써 항일정신이 깊게 배인 곳이다. 이같이 항일구국의 역사적 유서가 깊은 표충사를 거점으로 거사를 추진하였던 이들은 거사일을 4월 4일 용회동 장날로 정하였는데 이날은 사명대사의 춘향일 이기도 했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정오에 선생들은 비밀리에 연락되어 모인 5천여 명의 군중들에게 태극지와 격문을 배포하는 것과 함께 네칸 길이의 간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흔들고 나팔을 울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만세운동을 탄압하는 일본헌병을 때려 눕히고 헌병주재소를 부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일본군의 계속된 증원 출동과 탄압으로 해산되고 말았으며, 이 때 선생 등 중심인물 3백 64명이 붙잡혔다. 선생은 이 일로 1919년 11월 20일 대구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아 항소하였으나 12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