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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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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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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 선생 생가 본 가옥은 1919년 4월 17일 '주렴산 3.1만세운동'을 주동한 이철원 선생(1900~1979)의 생가이다. 이철원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한학과 신학문을 배우다가 서울에 가서 배재학당에 다니던 중 3.1운동이 얼어나자 동료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 후 휴교령으로 인해서 서울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하고 모의하여 '주렴산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 내려운 이철원 선생은 본 가옥 우측에 있던 구옥(소형 초가집)인 고모부 윤용원 선생 댁에서 비밀리에 거사를 계획하고 태극기등을 준비하며 동지들을 규합한 후 거사 당일에는 이 가옥 사랑채에 집결하여 뒷산인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 거사를 실행하였다. 거사 후 이철원 선생은 피신하여 중국, 미국 등지에서 학업과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제2대, 제4대 공보처장을 역임하였다. '주렴산3.1만세운동'은 보령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실행된 독립만세운동으로, 그 발원지가 된 곳이 이곳이며, 참여한 대부분의 애국지사도 마을 사람들이거나 이들과 친인척 관계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주렴산3.1만세운동'의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증산1리 창조적 마을만들기사업' 일환으로 2020년 8월 안채만 복원 정비하였다. 본 가옥을 정비하기 전의 구옥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포군이 폐지되고 1919년 남포군 청사가 헐리게 되었는데, 헐리는 군 청사의 목재들은 이철원 선생의 부친이신 이승규(1882~1954) 선생이 가져다가 개축한 것이었다. 목재들은 웅천천 하구 독곶말까지는 배로 운반하고 다시 이곳까지(2km)는 인부를 동원하여 지게로 운반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현재 복원된 본채뿐 아니라 1990년대 말까지는 사랑채도 보존되어 있었으나 사랑채는 없어진 상태이다. 본채와 사랑채 개축은 이철원지사의 거사 직후 이루어졌다. 이 가옥을 개축한 이승규 선생은 1911년 주산에 '옥성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보급하고 '조선어연구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휘문의숙, 만주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교사, 동아일보 기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한 애국지사였다. 2020.11. 보령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