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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부13도창의대진'(이하, 13도창의군)' 은 경기도 옛 양주군(현 구리시)에서 결성된 항일의병부대입니다. 1907년 7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로 폐위당하고, 뒤이어 8월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은 의병장 출신 이인영(李麟榮)에게 밀지를 내렸습니다. 밀지를 받은 이인영은 전국의 의병과 의병장, 그리고 대한제국 해산 국군이 결합된 '국민군'으로서 1만여 명의 '13도창의군'을 결성하고, 일제에 맞서 본격적으로 국민전쟁을 전개했습니다. '13도창의군'의 군사장 허위(許蔿)는 수도 진격을 위해 결사대 300명을 선발대로 거느리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 수택리(현 구리시 수택동)에 통제본부를 설치하고, 1만여 명의 '13도창의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이를 사전에 알아챈 왜병과 일대 교전을 벌였으나, 아쉽게도 패배함으로써 '13도창의군'의 서울진격작전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13도창의군' 결성과 서울진격작전은 전국적인 항일전쟁으로서 국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 만주와 연해주 등지의 독립군 결성으로 확산되었고,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궁국적으로 '13도창의군'으로 시작된 국민전쟁은 대한민국 독립을 약속한 최초의 국제문서인 '카이로선언' 쟁취와 8.15광복을 맞이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구리시는 '13도창의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이곳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2020년 12월 구리시 13도창의군기념사업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