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page


12page

독립투사 정헌태공 비기 공께서는 1902년 12월 22일 충청남도 서산군 인지면 화수리에서 유학자 상진옹의 장남으로 출생. 1940년 6월 28일 38세로 순국하시기까지 을사늑약으로 상실된 대한의 주권을 되찾고자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치신 독립투사이시다. 공께서는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재학시 1919년 3.1운동에 적극참여하면서 만주 간도의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 중 동년 11월 체포 투옥되시고 그 후 1926년 일본대학재학중 재일 조선학생들에게 '조선독립'을 주창 독립의지의 기개와 동경중심의 광복활동에 선봉이었고 1927년 월남 이상재 만해 한용운 민세 안재홍 유석 조병옥등과 함께 '신간호'를 결성 동경지회 간사와 경성본부 특파원과 대표를 역임 국내외의 조직을 강화 광범위한 '민족단일전선' 형성운동에 전념 1929년 광주학생운동당시 유석 조병옥과 함께 동조시위활동을 서울에서 주도했고 1930년 6월 '중앙청년동맹' 회의에서 연설하신 공을 체포, 투옥시킨 일제는 항일독립운동의 주도적 단체 '신간회'를 붕괴시킬 공작수단으로 구심인사인 공을 '조선공산당'의 관계자로 조작 7년 중형을 1923년 6월 언도 하였다. 공께서는 참혹한 옥고 중에도 불굴의 항일저항으로 징역8월의 가형, 모진 고문, 약물투여실험까지 당하여 가누기 힘든 몸으로 1938년 출감 입원치료에도 일경은 늘 감시했고 1940년 6월 28일 밤 10시경 일경들이 공의 병실에 가족을 쫓아내고 20여분 머물고 간 뒤 가족이 들어가 보니 공은 의식불명으로 유언도 못하고 운명하시니 일제는 전염병 시신이라는 거짓구실를 부쳐 화장하여 살해증거를 인멸했고 유택 마련도 저지했다. 공께서는 신구학문의 해박한 지식과 투철한 애국애족의 신념으로 무장된 이론가이며 특히 항일투쟁에는 백절불굴의 투사로서 '幼而學之는 壯而欲行之'의 경구대로 실천한 삶은 조국광복의 초석이 되었기에 조국에 앞날은 공의 위업을 받들어 길이 빛나리라 공의 순국대절을 기리기 위해 2005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에 의거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2007년 10월 서산시와 진주정씨 대제학공파는 위대한 애국자의 대의정신을 천추만대에 전하고 무궁한 민족번영을 영원히 기원하고자 공의 숭고한 생애를 정민에 새겨 선영하 동은사 묘정에 세웁니다. 서기 2007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