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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만세시위들 주모자 4명 판결 <4.3 거제 아주 장터 만세시위 주모자 윤택근, 이주근, 이인수와 4월 7일 국산리 만세시위 주모자 주종찬의 1심과 2심 결과> (매일신보, 1919. 5. 29.)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일제강점기 통영에서 본 거제도 전경 (191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밀양읍 전경 (191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3 거제 아주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한 이인수, 이주근, 윤택근 판결문 「출처 국가기록원」 12 13 Ⅰ . 3 · 1 운 동 과 경 남 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Ⅰ . 3 · 1 운 동 과 경 남 4월 3일 아주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윤택근, 이인수, 이주근 등이 주도하였고, 농어민들과 장 사꾼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6일에는 옥포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러한 만세시위는 일제강점기 동안 거제지역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거제 만세시위, 아주 장터에서 옥포로 이어지다 4월 4일 밀양군 표충사 승려들과 양산 통도사 승려 50명이 단장 장날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약 5천 여 명의 군중들이 참여했고,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돌로 유리창, 지붕, 벽 등을 부수었다. 3월 13일 서울 3·1운동에 참여했던 윤세주, 윤치형이 밀양 사립 동화중학교장 전홍표의 지도를 받아 밀 양 장날 시위를 주도했다. 3월 14일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160명이 만세시위를 하였다. 4월 2일 밀양읍 2차 만 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6일 평양에서 이주해온 기독교 장로교 신자들이 부북면 춘화리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산 위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징과 북을 치면서 만세를 불렀다. 밀양 4월 4일 단장 장날 표충사 승려들도 만세를 부르다 3.13 밀양 장날 만세시위 <수천명이 큰기 앞세우고 시위. 7명 체포> (매일신보, 1919. 3. 1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통도사에서 밀양 만세시위 증거물 압수 <만세시위 주도한 표충사 승려 검거. 증거물 양산 통도사에서 압 수> (매일신보, 1919. 4. 2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