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page


74page

조륵(趙玏) 선생(1649~1714)은 조선 인조때 중부 참봉 유증(惟曾)의 넷째 아들로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은 평생을 부지런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구두쇠라는 말을 들으면서 만석꾼의 재산을 모았다. 선생이 회갑을 맞아 당시 전라 경상도 지역에 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기근민들에게 그동안 모은 재산을 아끼지 않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선생의 도움을 받은 기근민들이 선생의 고마운 뜻으로 공을 기리고자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웠는데 고(考)자는 나를 낳아 준 사람도 부모지만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도와준 것 또한 부모라 하여 조륵선생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 이들을 살게 해 주었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어질기가 부모 같다는 뜻을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경상 전라 지방의 관리들이 선생의 공을 조정에 상소하여 정3품에 해당하는 가자(加資)의 벼슬이 하사되었으나 선생께서는 내 남은 재산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을 뿐인데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며 끝까지 벼슬을 사양했다고 한다. 평생 동안을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신이나 후손들이 호의호식하지 않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아낌없이 도와주었던 선생의 근검 절약정신과 자선사업의 행적은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 하겠다. 1995년 10월 후손들에 의해 충주시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 뒷산 중턱 조륵 선생의 묘소에 자린고비 정신이 담겨져 있는 묘비가 세워져 그의 높은 뜻을 후세에 기리고 있으며 지금도 선생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IMF 경제위기 상황에 처한 우리는 선생의 높은 뜻인 음성의 자린고비 정신을 몸소 실천하여 이를 극복하고 항상 어려울 때일수록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면서 불우한 이웃을 내 가족처럼 돌보자는 취지에서 1998년부터 자린고비 대상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뜻을 기리고자 이 유래비를 세우게 되었다. 1998년 11월 일 음성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