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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봉기 일어나 금산전투에 참여하여 큰 전과를 이루웠고 부상으로 양산방면으로 후퇴하다. 이후 9월부터 일제침략에 국권수호의 일념으로 군자금을 마련키 위해 가산을 탕진하며 항일운동을 진행하다가 1927년 왜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루고 출옥후 일심전념으로 국궈수호항일운동을 오상불망 잊지못하다 1937년 정축 10월6일 오정동 공의 8대조 향사때 여러 후손이 보는앞에 왜경형사가 와서 연행하려하자 태연한 자세로 술한잔 가져와라고하여 드시고 당당히 가시어 전주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시면서 1940년 경진 4월 출감하였으나 반신불수의 불구로 고생하다가 그토록 소망하던 조국광복을 보지못하고 1942년 임오 1월 4일 순종하시니 묘는 명천 양지촌 뒤 진좌이다. 이상은 문화원 간행 내고장의 빛난얼 대한충의록 간행되었지만 우둔한 후손들은 국가포상을 받지못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