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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재(烏川齋) 이곳에 모시는 오천 이문화 선생은 1358년 전공판서 이심의 장남으로 태어나 1380년 23세에 문과 장원급제를 하셨다. 조선 초기에 신진지식인으로 발탁되어 도승지, 경기.경상.전라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형조.예조.호조판서와 사헌부 대사헌, 예문관 대제학, 개성유후사 유후 등을 역임하시고 참찬 의정부사직을 수행하시던 중 1414년 6월 1일 향년 57세에 졸하시니 조정에서는 3일 동안 철조하고 「공도」의 시호를 내리고 대광보국승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중하였다. 태조께서 사초를 바치게 하자 도승지로서 "역사는 사실대로 바로 써서 숨김이 없어야 하는데, 군주와 대신이 스스로 보게 된다면 숨기고꺼려서 사실대로 바로 쓰지 못함"을 아뢰었고, 할 일없이 국록을 축내는 검교정승제도 폐지를 주장하였으며, 농사짓는 방법을 도식화 한 가색도를 만드시고, 호조에서 만든 지폐 호조저화를 사용하게 하는 등 백성들의 생활안정에 크게 기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