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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원의 묘 "통일이 자주국가 건설의 첫 걸음이다" . 대구 매일신문기자, 청구(영남) 대학교 근무, 4.19 민주혁명 후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으로 민족자주 통일운동과 2대 악법 반대운동을 조직.활동하다 5.16 군사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 1971년 경락연구회 결성, 침구사 자격획득 후 무료 진료활동 . 유신체제반대, 민족통일운동을 위해 투쟁하다 19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구속 1975년 4월 8일 대법원 사형 확정 다음날 새벽 사형 집행당함 . 2007년 1월 23일 재심재판에서 무죄선고 확정 1923년 3월 28일 경남 창녕 출생 / 1975년 4월 9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