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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옥여 임경재상 의병장 김경재(1872~1907)는 본관은 풍천, 호는 옥여로 1872년 4월 29일 양지군 주동면 평촌리(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장리)에서 선락장군 임낙호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한데 이어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당시 재직하고 있던 농상공부 주사직을 미련없이 버리고 1907년 8월 이천에서 의병단을 만들어 일본 기병대를 급습하고 이천읍 우편취금소와 순사분파소를 습격하였다. 또한 광주 실촌면에서 원주의병대와 합류해 일본근을 격퇴하였으며 광주 상림과 백암장터에서 일진회원을 총살하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이밖에도 용인 굴암산 주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는 한편 이천,여주,안성,양근(양평)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해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07년 11월 10일 일진회원의 밀고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수원수비대로 압송되었다. 그 후 모진 고문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함은 나의 길'이라 외차묘 일본인과 매국노들을 꾸짖다 끝내 수원수비대장에게 총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1990년 8월 15일 의병장 임경재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추모비는 1993년 6월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