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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거유지. 이 동굴은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던 유적입니다. 신석기시대는 후빙기의 따뜻한 기후가 도래하면서 현재와 비슷한 환경으로 변화되어 구석기시대의 자연채집 경제가 서서히 마감되고 돌을 갈아 생활도구를 만들고 토기제작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선사시대 특히 신석기시대의 집터(움집)는 여러 곳에서 발굴되고 있으나 인공적으로 동굴을 파고 살던 것은 드물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유적입니다. 이 동굴은 1962년 당시 성심여자대학교(지금의 한림대학교)를 조성하기 위해 터를 닦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동굴의 입구가 잘려나간 상태지만 본래의 모습은 이렇게 열려있는 공간이 아닌 산기슭입구의 좁은 통로(굴)를 통해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눈으로 확인되는 내부공간의 바닥 직경은 약 4m의 원형이고 천장의 최고 높이는 2.1m입니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처음 발견될 때 동굴안에서 세 사람의 뼈와 함께 석기, 토기 대통옥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동굴은 발견당시 동네 명칭을 따서 '교동동굴'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교과서에도 수록된 유명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동굴의 천정에 불을 사용하여 생긴 그을음이 남아있던 점으로 보아 처음에는 주거용으로 사용하다 어떤 연유로 나중에는 무덤으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도끼, 칼, 화살촉, 이음낚시 등 석기류와 옥, 수정조각, 백마노 조각등의 장신구, 바닥이 편평하고 아기리 부분에만 무늬를 넣은 빗살무늬 토기 등이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