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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동지의 삶과 죽음 ’91년 4월 24일 상명여대의 학원자주화투쟁 집회에 지지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총학생회장이 불법 연행되자, 명지대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압하였고, 학생들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4월 26일, ‘학원 자주화 완전 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학교 안팎의 상황을 연락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동지는 제일 늦게 철책으로 된 담을 오르게 되었는데, 백골단 5~7명이 동지의 다리를 붙들고 끌어내리면서 쇠파이프로 전신을 구타하고 도망갔다. 잠시 후 오른쪽 머리와 얼굴이 피범벅이 된 동지가 담을 넘어 올라오고 학우들이 부축하자 실신하였다. 그러나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운명하였다. 이후 27일 연세대에서 1만여 명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학우들이 모여‘폭력살인 규탄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29일에는 박승희 동지가 분신했으며 5월 1일에는 김영균 동지가, 3일에는 천세용 동지가 분신하였다. 4일 에는 16만 명의 학생시민이 모여 백골단 해체를 외쳤으나 6일에는 박창수 동지가 안양병원에서 타살되었으며 8일에는 김기설 동지가 서강대에서 분신하였다. 이에 9일에는 전국 30여 만 명이 모여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가졌다. 14일에는 강경대 동지의 장례행렬이 경찰에 의해 막힌 채 밤10시까지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연세대로 운구를 옮겼다. 18일 2차 장례 중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이정순 동지가‘노태우 정권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고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광주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뜨거운 투쟁으로 도청 앞 노제를 사수하고 5월 20일 망월동 묘역에 안장하였다. 출처 : 민족민주열사희행자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