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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원광종합여고에 첫 발을 딛은 동지는 ’76년부터 ’82년까지 군산 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 이른바 ‘오송회’사건에 연루되어, 교사직을 파면당하고 ’87년까지 6년 동안 긴 수형생활을 하였다. 출감 후 ’88년 9월 특채로 군산 소흥중학교에 복직하여 교사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이것도 잠시뿐 군산옥구교사협의회와 전교조 활동을 통한 민족민주인간화의 ‘참교육’을 몸소 실천하다 ’89년 8월 해직의 아픔을 다시 맞게 된다. ’7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던 동지는 ’85년 첫 시집 '대발'에 이어 ’89년에는 '목숨을 걸고'를 내는 등 해직 이후 왕성한 시작활동을 펴왔으며, 줄곧 교육문예 창작회 회장 및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동지가 위암3기로 판정을 받았을 때는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악화된 상태였다. 이후 하동 요양원과 단식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52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출처 :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