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page

이동수(당시24세) 화 장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81년 3월 숭실대학교 입학 1983년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 입학 1983년 4월 군입대 1985년 10월 군제대 1986년 5월 20일 서울대 학생회관 4층에서 분신하여 운명 |19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서울에서 태어나 ’83년 서울대 농대에 입학하여 생활하던 중 ’83년 군대에 입 대하여 ’85년 복무를 마쳤다. 이후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 서 투쟁에 함께 한다. ’ 86년 5월 20일 오후 3시 30분경 오월제 행사 가운데 문익 환 목사님의 연설 중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구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제국주의 물러가 라”, “어용교수 물러가라”등을 외치며 동지가 불덩어리가 되어 떨어졌다. 아크로폴리스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극도의 놀람과 흥 분에 휩싸였다. 7m 아래로 떨어져서도 한동안 불길이 오르다가 동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위에 쏟아지는 최루탄의 매운 연기, 폭발음,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아 크로폴리스를 향한 곳곳의 통로에서 색색의 헬멧을 쓴 사복 기관원들과 중무장 한 전경들이 들이닥쳤다. 김세진, 이재호 동지의 분신투쟁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동 지의 돌발적인 분신은 많은 학우들을 극도의 비분 속으로 몰아넣었다. 학내 곳곳 에 흩어진 학생들은 다시 열을 지어 전경들과 싸웠고 그들은 최루탄이 매서워가 아니라 조국의 현실이 가슴 아파 진한 눈물을 흘렸다. 동지의 수첩에 적힌“…아 니오, 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 민중은 말이 없지만, 또 우둔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역사만이 나의 몸부림을 심판해줄 것이다.…”라는 글과 같이 동지는 온 몸으로 현실에 맞서 투쟁하였다. 동지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오후 4시경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