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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온순 (나이미상)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 1981년 경기고 졸업 1981년 3월 동국대 사범대학 수학교육학과 입학 1983년 3월 29일 시위예비음모로 경찰에 연행되어 일주일 조사 후 강제징집 1983년 8월 14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17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학생운동에 헌신해 오던 최온순 동지는 ’83년 3월 29일 시위예비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어 1주일간의 조사를 받은 후 강제징집 당했다. ’83년 8월 14일 군에서 집으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 대로 가보니 새벽 4시께 숨을 거둔 뒤였으며 시신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헌병대에서 나온 자가 자살이라고 통보하여 이에 가족은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 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 영안실의 시신을 1주일간이나 지키며 재수사 및 진상규 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군수사대는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의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 는 수정통보를 얻어내어 동지는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 장 되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강제징집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 로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진상규명을 요 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보안사의 녹화사업대상자로 항상적인 감시와 동향관찰을 받았다는 점, 3~4일간 보안부대에 다녀온 점, 당시 중∙소대장은 물 론 소대원들까지 동지가 운동권 사병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 사망 당시 근무자 김모씨가 동지의 군기를 담당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보안부대의 녹화사 업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부당한 고참들의 괴롭힘에 대해 저항하다 사 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녹화사업의 내용, 방법, 프 락치 강요여부 등이 실지조사 등 녹화사업 관련자료는 기무사에서 제출에 응하 지 않아 아직도 진상조사를 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 끝내살리라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