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page

이윤성(당시19세) 1964년 1월 3일 출생 1981년 경기고 졸업 성균관대 역사철학계열 입학 1982년 인문과학 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1982년 11월 3일 학생의날 가두시위에서 연행 5일 강제징집 됨 1983년 5월 4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17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1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역사철학계열에 입학하 여 자신의 주변뿐만 아니라 사회,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 창생활을 하였다. 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 며,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동지는 ’82년 11월 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하여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 께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인문과학연구회 회장이라는 것이 밝혀져 11월 7일 새벽에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 아버 지가 고령(60세가 넘음)에다가 3대 독자이며 시력이 나빠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 10일경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 갔을 때 건강한 모습으로 어려운 조건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제대 일자가 얼마 남 지 않은 5월 말경 군당국으로부터 동지가 북한에서 날려 보낸 삐라의 일종인 안전 보장증을 가지고 있었던 일로 죽음 직전까지 군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고, 군 수사기관에서조사가 끝난 후 자대로 돌아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학생의날 시위로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되어, 현역입영 대상이 아님에도 강제징집, 보안사령부의 A급 관찰대상자로 수시로 동 향이 보고 되고, 보안사령부에서 수차례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을 것으로 추측 되어지고 있다. 또한 실제 보안부대는‘녹화사업’을 위해 의가사 제대를 앞둔 동 지를 연행하여 보안부대에서 ’83년 4월 30일경부터 사망 전날인 5월 3일까지 강 도 높은 조사를 하였고, 사망 시간도 3시간의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끝내살리라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