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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당시20세) 1962년 1월 출생 1981년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1981년 11월 25일 시위관련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음 1982년 11월 28일 강제징집됨 1982년 1월 4일 자대배치, 이후 학원소요 관련자로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옴 1982년 7월 2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16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은행에 재직 중인 아버지와 교편 생활하는 어머니 사이에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동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남달리 독서를 많이 하여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 였고 비교적 과묵하고 조숙한 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입시 준비에 바빴던 시간에도 틈틈이 많은 문학작품과 철학책들을 읽고 자기나름의 생각과 인식을 정리하였다. 이를 시와 단상의 형식으로 남겨놓고 신문, 월간지 등을 읽 으며 시국, 민주화, 언론 등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표현하였다. 연세대 영독불계열에 입학한 동지는 일차 문무대 훈련 당시 시위를 선동하고 노래를 선창하였다는 이유로 문교부 리스트에 기록된 뒤 연행되어 조사를 받다 가 강제징집을 당하였다. 그리고, ’82년 7월 2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강제징 집, 녹화사업으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동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간 가족들은 병참모부에서 현수막과 빈소를 보게 되었다. 군당국에서는 사고 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현지답사는 불가능하 다며, 가족들에게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 사인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치 않 는 다는 각서를 받아갔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81년 흥사단아카데미와 학내에 유인 물을 제작∙배포하는 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1월 25일 학내시위에서 연행되 어 동료 14명과 함께 강제로 입영되었다. 부대생활 중 지휘계통과 보안부대의 관 찰, 면담 등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사망하기 전 입대동기가 사신()관계로 보 안사령부에 구속되었고, 학교 선배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범으로 오인되 어 보안사령부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동지와 학교동료들을 언급, 경찰과 보안 부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또한, 동료들에게 죽음을 예시하였고, 전방실습생에게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과 장영자사건에 대해 물었다. 군 동료들과 소대장, 중대 장, 보안부대 병사 등은 휴가 전후 동지가 보안부대에 호출되어 갔다고 하나 보 안부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끝내살리라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