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page

김의기 (당시21세) 파주 금촌공원에 안장 1959년 4월 20일 경북 영주군 부석면 용암리에서 4남 2녀중 막내로 출생 1976년 3월 서강대학교 경상대 무역학과 입학 1977년 서강대학교 KUSA 하계 농촌 활동 대장 1978년 후배들과 소그룹 학습을 시작. 농업문제 연구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 이후 농촌 활동 및 감리교 청년회 전국연합회 활동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목격 1980년 5월 30일 오후 5시경‘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종로 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하여 운명 |16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산천의 신록이 푸르름으로 물들어가는 5월이 돌아오면“동포여, 우리는 무엇 을 하고 있는가?”라는 동지의 외침이 더욱 생생하게 우리에게 들려온다. 군사독재에 의해 18년 동안 얼어붙었던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심으려던 ’80년 서 울의 봄은 얼굴만 바뀌어 더욱 포악해진 군사독재집단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 히고, 이에 항거하던 민중의 분노는 광주에서 폭발하였다. 우리나라의 군대에 의 해 우리 민족이 처참하게 살육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동지는 입이 있으나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던 광주의 참상을 직접 선봉에 서서 서울 시민에게 알리려했다. 농민의 어려운 생활과 농업문제 해결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고 독실 한 신앙인이었던 동지는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보아 자신이 목격한 동족 살인의 민족적 비극을 알리지 않으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점차 꺼져가는 서울의 민주화 열기에 다시 불을 붙이고자 결심한 것이다. 동지는 ’80년 5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던 정기 금요기도회를 시위 날로 잡았으나 그 곳은 자주 시위가 있던 곳인데다 그날은 시위를 예상하여 일방통행 마저 금지시킬 만큼 경계가 삼엄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요기도회는 취소됐 지만 시위를 결행키로 한 동지는 12시경 회관에 들어가‘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하고 6층의 폭 1m 베란다를 건너서 창문 밖으로 떨어져 운명하여 계엄군에 의해 시신이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유인물 작성 당시 계엄군과 실랑이가 있 었다고 한다.) 동지가 투신하여 운명할 당시의 정황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 지만‘동포에게 드리는 글’의 내용을 본다면 분명히 시위를 계획할 때 죽으려 하 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끝내살리라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