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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식 (당시24세) 화 장 1963년 7월 인천 출생 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5년 노동현장에서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1986년 샘터교회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19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원, 6월 대투쟁 적극 참여 1987년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체육부장으로 참여하여 동료를 구하고 운명 |14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주 민중항쟁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된 삶인가에 대해 주위의 친구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학습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문예반 활동을 통해서 시대의 아픔을 시로써 표현하기도 했다. ’82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동아리에 가입해서 고교시절부터 생각 해왔던 민주화의 대열에 앞장섰다. 동지는 학교 내에 경찰이 진주하고 학내 집회 조차 열기가 힘들었던 1,2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 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으며, 이때부터 노동자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곤 했다. ’85년 구로공단 내 금속공장에 들어간 동지는 현장생활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삶을 배우고, 이 땅의 노동자는 뭉쳐야하며 그럴 때 노동자들은 진정으로 인간다 운 삶을 살 수 있고 이 땅의 주인으로서 일어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입사 한지 몇 개월 후에 신분이 드러나서 공장을 나와야만 했다. 그 후 ’86년 9월부터 인천대 앞에다 사회과학 전문서점‘밀물’을 운영하며 또 다른 현장생활을 준비하던 동지는 ’87년 박종철 추모기간에는 같이 공부한 노동 청년들과 거리로 나가 군부독재의 만행을 폭로하고, ’87년 5월 그동안 같이 고민 했던 노동청년들을 모으고 좀더 많은 대중들을 모으고자 샘터교회 청년회를 만 들고 실제적으로 홍보부를 맡아 운영해 나갔다. ’87년 6월 가두시위 때 노동청년 회원들과 더불어 선두에 서서 군부독재의 기만성을 폭로하는데 앞장섰고, ’87년 7월에는 양심수 전원 석방 촉구대회에 참여하였으며, 그 후 답동 성당 농성에 참 가하여 직접 각목을 들고 경비를 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87년 7월말 동지는 인기노의 수련회 도중 동지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자 멀 리서부터 뛰어와 자신이 수영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최선두에 서서 동료를 구하 려고 애쓰다가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