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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중학교를 중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왔다. 그 러나 동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23세 되던 해, 독서회와 야학을 다니면서 진 실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시흥에 있는 동도전자에 다니면서 노동자의 권리 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동일제강에 입사하여 민주노조 건설에 핵심적 역할을 해낸 동지는 신흥정밀에 입사하게 되 었다. 신흥정밀은 당시 부당노동 행위 및 임금 착취에 대하여 조금만 항의를 하여도 구타를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해고시키는 무법천지의 회사였다. 동지는 동일제 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작업과 현장 실태 파악에 전력투구하였다. 당시 여러 상황들이 동지를 힘들게 하였지만 동지는 노동자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탁월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86년, 신흥정밀은 임금인상투쟁을 시작하였고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 과정 에서 동지는 경찰과 회사 측의 폭력적인 탄압에 맞서“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 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며 분신하였다. 동지가 분신한 직후 영등포 노동자들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격렬한 몸싸움과 천신만고 끝에 꺼져가는 동지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다. 동 지는“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없냐?”라는 말에 고통스럽게 손을 뻗어 올리며 사력 을 다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삼반세력(반민족, 반민주, 반민중을 뜻하며 당시 정권을 지칭하는 말) 타도하 자! 투쟁하자!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 정의가 넘치고 사랑이 있어야 하고 평화가 있어야 한다. 신흥정밀 동지들아. 끝까지 투쟁하자. 미안하다.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먼저 가서…” 병원에서 동지는“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 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운명하였다. 박영진 (당시26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0년 충남 부여 출생 1976년 배문중학교 중퇴후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으로 어렵게 생활 1984년 1월 (주)동도전자에 입사 1984년 7월 (주)동일제강에 입사 1985년 9월 18일 (주)신흥정밀에 입사 1986년 3월 17일 임금투쟁중“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외치며 분신하여 운명 끝내살리라 |127| |12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