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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당시57세) 파주 천주교 나자렛묘지에 안장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 출생 1932년 평양 숭실학교 입학 1940년 4월 일본 동경 일본 신학교에 입학 1944년 7월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가다 7월 일본군에서 탈출, 중국군에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에서 광복군에 편입, 광복군 대위에 임관됨 1945년 11월 김구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으로 입국, 비서로 활동 1947년 12월 조선 민족 청년단에 참가 1948년 한신대 졸업 1953년 월간‘사상계’발행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문학부분상 수상 1964년 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에 참가, 언론윤리법반대투쟁에 나섬 1965년 조국수호협의회에 참가, 한일조약 반대투쟁에 가담 1967년 6월 옥중 출마로 동대문 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1971년 일본군 탈출과 광복군 시절을 담은 저서‘돌베게’출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지지 1973년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1974년 1월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주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15년형 선고 받고 복역 197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박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18년 평북 의중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와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 다가 ’44년 학도병에 중국에 끌려갔다. 동지는 탈출하여 광복군이 있는 중경으로 가서 광복군이 되었다. 광복군으로 당당히 조국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임시정부요인들과 함께 해방 후 조국에 들어왔다. 해방공간에서 조선 민족 청년단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48년 한신대를 졸업하고, ’53년부터 사상계 를 발행하여왔다. 박정희 정권이후 언론자유수호와 한일조약 반대투쟁 등 유산 에 맞서 싸워왔다. 오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으로 재야 대통령이라는 칭송까지 들은 민족의 지 도자였던 동지는 ’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구축해 갈 때 가장 선두에 서 서 민주세력들을 결집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74년 1월에는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 고 복역하다가 ’7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유신헌법 철폐를 목적으로 한 개헌운동의 노선단일화를 위해 민주통일당을 탈당하였다. 동지는 ’75년 8월 17일 산악회 회원 40여 명과 함께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 갔다가 14미터 벼랑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 다.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검사 서모씨는 동지가 김모씨와 함께 약사봉 정상에 올 라갔다가 하산 도중 실족 추락한 후 뇌진탕으로 사망하였다며 내사종결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과학적 조사기법인 컴퓨터추락시뮬레이션 실 험결과 추락사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끝내살리라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