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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 (당시42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1932년 충남 공주 출생 1955년 3월 서울대 법대 졸업 1955년 5월 서울대 법대 석사과정 1958년 서독 쾰른대 박사과정, 박사학위 취득 1962년 서울대 법대 교수 1973년 10월 16일 중앙정보부에 출두 1973년 10월 19일 조사받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7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박정희정권이 집권한 이래 중앙정보부는 권력기관이 되어 외국에까지 악명높 은 비밀경찰조직으로 널리 알려졌다. ’72년 10월 유신이후 유신반대투쟁이 조직 되고, ’73년 8월 김대중 후보를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계의 이목이 박정권과 중앙정보부에 집중되자 국내외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중앙정보부는 ’73년 10월‘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 명단에는 ’73년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도 들어 있었다. 유 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과 관련하여 ’73년 10월 16일 오후 2시경 중앙정보부 남산 분청사에 동생(당시 중앙정보부 요원)과 함께 임의 출두하여 조사받던 중, 출두 3일만인 19일 조사과정에서 고문에 의해 사망하였다. 중앙정보부는 이를 은 폐 조작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는 조사 중 고정간첩으로서 자신의 가족과 국내 조 직망을 보호할 목적으로 감시가 소흘한 틈을 이용 7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 살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88년 검찰은 진정사건에 대해 자살이나 타살 의 증거도 없고, 간첩여부를 입증할 증거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종결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분명한 증거없이 간첩 혐의를 두고, 잠 안재우기, 모욕 심한 구타 등 고문을 가하여 자백을 요구하였고 간첩으로 단정하는 일련의 문서는 사후에 작성하였고 현장검증도 조작하였다. 감찰실 조사결과 차모씨 등에 의해 고문을 가한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 도 불구하고 중정은 조직적으로 은폐하였다. 끝내살리라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