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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3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지방에서 보기 드문 수재로 ’53년 서울 대 문리학과를 들어가 졸업한 후 ’57년 경남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다.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3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동지는 삼촌인 김종태를 만나「청 맥」을 만들면서부터 통혁당 활동을 개시하였다. 동지는 소위 통혁당의 핵심 멤버 로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청맥은 단순한 잡지수준을 넘어 4.19이후 분출된 자 주, 민주, 통일의 열기와 숨막히는 군부독재 억눌린 많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공간이었다. ’68년 통혁당사건 으로 구속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72년 7월 15일 사형 집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대중의 통일열망을 잠재우고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선건설 후통일론’이외의 다른 모든 정책이나 활동은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합리적인 통일방안의 제시나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모두 반 공법으로 다스려졌다. ’68년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소위‘통일혁명당’사건은 서울시당 책임 자 김종태, 민족해방전선 책임 김질락, 조국해방전선 책임 이문규, 전남도당 창 당준비위원장 최영도 등 총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60년대 최대 의 지하혁명당 조직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과연 이들이 비록 북한과 연계되었다고 사형되어야만 했는가? 등 많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절된 전통적 통일운동, 즉 남북을 포괄 하여 전국적 차원에서 혁명적 당 역량을 건설하여 외세와 매판세력을 축출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룬다는 전통적 운동의 맥을 남한 내에서 복원시키려는 운동이 었다. 끝내살리라 |77| 김질락 (당시39세) 1934년 경북 영천군 금호면 냉천동 출생 1953년 서울대 문리대 입학 1957년 경남매일신문 논설위원 1964년 8월 「청맥」편집장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 1972년 7월 15일 사형집행 |7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