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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3년 청주지역에 도시산업선교가 시작될 무렵 중학생으로 사회선교와 현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78년 3월 청주지역에서 노동자들은 퇴직 금문제로 장기적인 농성을 전개하게 되었고, 농민 소작인 중 한사람이 토지를 매 입하려는 과정에서 뭇매를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노동자와 농민 들은 단식 농성으로 맞서 투쟁하였고, 동지도 같이 투쟁에 참여하면서 경찰의 집 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민중생존권 수호를 위한 과정에서 113일이 경과되 도록 문제 해결이 안 되자 심리적 갈등을 겪던 동지는 정체불명의 친구들과 만나 게 되는데, ’78년 7월 4일 정체불명의 친구들과 만난 후 돌아와 이상한 언행과 심 각한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계속된 감시와 탄압, 일을 잘 돕 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 등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던 동지는 병원에 입원 치료 를 받았으나, 5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7월 8일 운명하였다. 동지의 부친 정진동목사는 ’72년경부터 청주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하였는 데, 청주시청 청소부들의 퇴직금 인정, 4∙19 시국성명 발표 등의 활동을 하였 다. 이로 인해 전담형사가 지정되어 동향을 파악하고 중요한 집회가 있을 때에는 일대일 감시를 당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담형사들은 동지에게 접근하여 아버지의 정보를 확보하려고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만18세의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법영(당시18세) 청원군 옥산면 호죽리에 안장 1960년 6월 충북 청원군 출생 진천 한천초등학교 졸업 1973년 7월 청주시청 청소부들의 근로조건개선 및 임금인상투쟁 운동 참여 1975년 1월20일 청주 주성중학교 졸업 1977년 청주신학대 입학 수원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노동문제 강의를 듣는 등 산업선교에 관심 가짐 1978년 3월 17일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신흥제분, 조광피혁 노동자들과 농민문제 도시빈민 문제 등으로 150일간 장기 농성, 공안기관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 받음 1978년 6월 25일 귀가 후 이상한 언행을 하기 시작하며 정신에 문제가 생김 1978년 7월 8일 공권력의 지속적인 감시, 위협에 의한 장기간 심리적 억압으로 의문의 죽음 끝내살리라 |59| |5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