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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1년 2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3월 경북대 의과대학에 장 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예과 1학년 2학기 때 휴학을 하였다가 다음 해인 ’72년 3월 복학하여 예과를 수료하고 ’74년 3월 의과대학 본과로 진학하였다. 동지는 ’72년부터 경북고 및 경북대 의대 1년 선배인와 함께 본교 학생들과 교 류하면서 교련반대, 유신정권반대 등을 주장하며 각종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였 다. ’74년 4월 민청학련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유신 독재정권에 대한 학생시위가 격화되고, 이 과정에서 경북대 본교 학생들이 검거되어 구속을 당하자, 심오석은 경북대 의대 동료 학생들과 시위를 조직적으로 모색하던 중 ’74년 12월 5일 경북 대 의대생 남모씨의 양심선언문 발표과정에서 촉발된‘경북대 의대 유신반대 철 야농성’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동지는 ’74년 12월 13일부터 ’75년 1월 29일까지 47일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동지는 ’74년 12월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후 실종될 때까지 약 2 년 동안 의대 본과 1학년으로 재학하였다. ’76년 11월 14일경 친구로부터‘피해야 되겠다’는 말을 듣고 삼랑진으로 피하였던 중 동지는 동대구역에서 건장한 남자 2명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목격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당시 대구∙경북지방의 공안기관에서 일상적 으로 고문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공안기관원의 진술을 통해 확인하 였다. ’74년 12월 5일 발생한 경북의대 학생들의 반유신농성 사건 배후주동자였 으며, 이로 인해 동지는 공안기관의 밀착감시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문을 받았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동지는 과연 열차로 연행되었는지의 여 부는 명확하지 않으나 당시 대구지역 공안기관에서 열차로 신병을 인도하는 관 행을 고려하면 동지가 열차로 연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77년 동지는 유신반대 철야 농성과 이로 인한 무기정학 처분, 공안기관의 밀착감시, 고문 등을 받은 사실이 실종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 하였고 결국 이와 관 련하여 실종∙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심오석 (당시24세) 1952년 3월 2일 출생 1971년 2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 1971년 3월 경북대 의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 1972년부터 교련반대, 유신정권반대 등을 주장하며 각종 집회나 시위에 참여 1974년 3월 의과대학 본과로 진학 1974년 12월 5일 ‘경북대 의대 유신반대 철야농성’참여 1974년 12월 13일 47일간 무기정학 처분 1975년 의대 본과 1학년으로 재학 1976년 11월 14일 등교중에 신원불상의 친구로부터‘피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삼량진으로 피신하던 중 행방불명됨 끝내살리라 |57| |5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