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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당시31세) 부산 팔송 시립묘지에 안장 1961년 7월 전남 여천 출생 1985년 부인 이정례씨와 결혼 1991년 12월 부산시 장림1동 철거대책위 교육부장 역임 1992년 10월 대책위 총무 역임 1992년 11월 3일 “끝까지 투쟁하여 주거권을 쟁취하자”라고 외치며 철거에 맞서 싸우다 철거깡패의 집단구타로 운명 |49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92년 10월 26일 오후 1시경 부산시 사하구 장림지역은 처음으로 강제철거를 맞게 되었다. 중장비를 동원한 100여명의 철거반원이 무력으로 몰아붙였으나 이 를 저지하던 주민들과 동지는 LPG가스 배출로 위협하였고, 부상당한 부녀자의 몸부림으로 강제철거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집을 지켜냈다는 기쁨도 잠시. 11월 3일 오전 대대적인 강제철거가 다시 감행되었다. 공권력이 투입되어 철거깡 패를 돕는 상황이었고 주민들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이리저리 끌리며 당하는 모 습을 지켜보고 있던 동지는 참다못해 그들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동지는 운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동지에 대한 폭력살인의 진상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철거깡패 이외에 전경, 경찰간부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발생 한 사건에 대해 단순한 심장마비라는 사인은 지역주민이나 모든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11월 5일 오전, 공권력을 동원한 시신 강제탈취는 자신 들의 폭력살인을 인정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동지의 죽음은 서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보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위해 투쟁하는 철거민들을 폭력으로 짓누른 결과에 다름 아니다. 동지여! 이제남은가족은어떻게살아가야합니까? 젊은아내어린자식이들은누굴믿고살아가야합니까? 남은장림주민들은어떻게이땅을지켜가야합니까? 원망스런동지여! 한많은동지여! 그대의죽음은죽음이아니라부활입니다. 빈민해방의불꽃으로다시타오를부활입니다. 그대의소원, 그대가살아생전이루지못했던빈민해방에대한염원 남은우리들이하겠습니다. 복수의칼을갈아가진자처단하고빈민해방쟁취하겠습니다. 지하에서두눈부릅뜨고지켜봐주십시오. - 추모시중에서- 끝내살리라 |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