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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경북 영일군 흥해면에서 ’30년 11월 11일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에서 자란 동지는 어린 시절 일제말기 학병으로 끌려갈 위기에서 산으로 도피, 일제의 만행에 대응할 정도로 그때부터 특유의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선지자의 철저한 고독속에 살다간 부산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며 야당통합의 주역으로 활동한 동지는 대학시절 한국기독학생총연맹에서 활동하면서 서서히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고 YMCA총무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당시 강한 보수 성을 띄고 있던 YMCA는 목사에게 한계를 느끼게 했고, 이에 중보교회에 들어가 46세의 나이에 목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중부교회를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을 더 욱 확대해 나갔고, ’80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결성하여 6∙10항쟁을 이끌 어내는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 이후 동지는 우리 사회에서 자활의 기회를 박탈당한 장애인에게 동등한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위한 운동의 저변확대를 위해 한울장애인 자활센터를 건립하고, 한울 장애인 어린이집을 개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92년 지병으로 운명하였다. ‘어린아이와같은해맑은웃음을간직하고매사에임하는그는일상생활에있어서도항시도 헛시간을보낸적이없다. 자신을위해서는아무것도돌보지않은철저하게가난한벗삼아살 아온것이그의전생애이다. 최성묵목사의삶의골은누구보다깊게패여있었다. 민주화운동추진과정에서 숱한 추문과 오해 속에서 동지들부터 외면당해야 했던 그 권력에 기행하고 있는 기성교회의 박해속에서도 굳굳하게 대항해야 했던 그 이데올로기의 질풍속에 자신을찾아야했던고행…등이시대의선지자가겪어야하는처절한고독과외로움을하나 가득가슴에다품고떠나갔다. 경주선산에장애자학교설립이꿈이었다는그는지금우리곁에없다. 그러나그가우리에게 남기고간민주화의갈망만은우리와함꼐있을것이다.’ - ‘주간인물’에 실린 글 중에서 - 최성묵 (당시62세) 1930년 11월 11일 경북 영일군 출생 1951년 포항 중고교 1회 졸업(6년제) 서울대학교 물리대 수학과 3년 수료 연세대학교 신학 대학원 졸업 1976년 1월 1일 중부교회 전도사취임 S.C.M(K.S.C.F 전신) 총무 역임 V.S.I.S 부산 학생과장 역임(미공보원) 부산 Y.M.C.A 총무취임 부산 N.C.C.회장(유신반대투쟁, 10월 부마항쟁주도) 국민연합공동 의장(5.17수배 및 고난 겪음, 6월항쟁 주도)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장애자 임원회 위원장 야권통합(부산대표주도) 1992년 3월 21일 지병으로 운명 끝내살리라 |485| |48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