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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진주농업학교 3학년때 반일지하조직의 책임자로 항일 운동에 참여하 였고 ’38년 일본 동지사대 재학 중 반일운동으로 퇴학당하고 구속되었다. ’45년 해방과 동시에 건준위에 참여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지리산에 입산하여 유격투쟁을 하였다. ’53년도에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 역시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전향제도를 거부하고 비전향자로 정치 적 신념과 지조를 고수하였다. 4.19 직후 정세변화속에 건강이 악화되어 병보석 으로 출소한 후 은둔 생활을 하였다. ’72년 지하조직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5년 구형을 받았으나 7.4남북공동성 명으로 4년 선고를 받았다가 정세가 다시 악화되어 과거의 형집행정지 형량이 가산되어 장기 투옥되었다. 조국의 민족민주운동과 통일운동에 전념하던 중 ’92 년 1월 18일 지병으로 운명하였다. 박판수(당시74세) 1918년 9월 10일 경남 진양군 진성면 중촌리 출생 1934년 사봉초등학교 졸업 1934년 진주농업학교 입학 1937년 진주농업학교 3학년때 반일 학생운동 조직의 진농 총책임자로 활동하다 퇴학 1938년 일본 동지사대학 재학중 반일운동으로 퇴학, 구속 1939년 동경 일본대 재학중 반일운동으로 퇴학 1944년 일본학도병 강제징집을 반대하여 덕유산 입산하여 반일투쟁 준비중 해방을 맞음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 진양군 치안책임 1946년 함안 서하국교 교편 잡음 1947년 남로당 함양군 군당부책으로 지하활동하다 지리산에 입산하여 야산대투쟁을 전개함 1948년 여순사건후 김지회 여순 책임자와 합류하여 투쟁함 1950년 6월 25일 진양군당 책임, 후퇴시 지리산에 입산하여 유격투쟁 전개 1951년 유격투쟁하다 진주시 당책 등 경남지구 수개군당 (함양, 산청, 진양, 합천)의 지구당책 역임 1952년 미군의 세균전으로 장질부사에 감염되어 심하게 앓음 1953년 2월 교전 중 체포됨 1956년 15년형 선고받음 1957년 전향제도를 거부히고 비전향자로 정치적 신념과 지조를 고수함 1960년 4.19 이후 정세변화속에 병보석으로 출소 1972년 지하조직사건으로 피검되어 15년 구형. 7∙4성명으로 4년 선고를 받음 정세 악화로 과거의 형집행 정지 형량이 가산되어 장기투옥 됨 1986년 3월 총합 24년의 옥고를 마치고 만기출소 함 1992년 1월 1 8일 밤 11시 30분에 지병인 기관지 천식증세의 악화로 운명 끝내살리라 |483| |48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