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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곤 (당시51세) 1937년 4월 4일 경남 진해군 진례면 청천리 출생 1953년 4월 부산 사범학교 입학 1954년 부산사범 사회과학 이론연구회‘암장’회원 1956년 부산 사범 졸업, 울산 신암국교 재직 1964년 김해연구소 재직 1972년 대산목재 사장 1974년 5월 1일 이른바‘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 무기선고 1982년 12월 13일 형 집행정지로 출소. 투병생활 1988년 5월 5일 옥중 생활 후유증으로 운명 |44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37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하였다. ’53년 학국전쟁이 막바지에 접에 들 었던 4월에 전국수재만 모인다는 부산사범학교에 2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 하였다. 사범학교 2학년때 고 이수병 동지와 함께 사회과학 학습모임‘암장’( )을 만들어「도이치이데올로기」, 「대중철학」등 사회과학 서적과 홍명희의「임 꺽정」을 비롯한 폭 넓은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또한 회원들과“무산 대중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동지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는 서약을 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졸업 이후 울산 신암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64년 김해연구 소에 재직하다가 ’72년 부산의 대신목재 사장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에 반대하는 양심적 지식인들과 여론을 무마하고 정권안보를 위하여 조직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10년 전 무협의 처리된 인혁당 사건을 다시 꺼내어 이른바‘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하였다. 동지도 중정에 끌려가 온갖 고문와 회유를 받기도 했다. 당시 수사관이 동지에게 청와대에서 50명 잡아 넣으 라고 했는데 중정 일산 수사관의 반발로 23명에 그쳤다. “당신은 사업을 하나까 내말을 잘 들으면 석방은 물론 사업자금을 대 줄테니 목선타고 북한에서 내려왔 다고 한마디만 써라.”고 하였다. 동지는 온갖 고문속에서 굴하지 않고 인간의 존 엄성과 양심을 지켰다. 동지는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평생지기였던 이수병 동지 와 7명의 동지들은 ’75년 4월 9일 사법살인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동 지는 ’82년 12월 13일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였으나 옥중생활의 휴유증으로 ’88년 5월 5일 먼저 간 동지들의 곁으로 떠나갔다. 끝내살리라 |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