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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당시23세) 1967년 4월 5일 대구 출생 1986년 대일 고등학교 졸업 청주사대 역사교육과 입학 1988년 흥사단 아카데미 회장. 제4대 동아리연합회 학술부 차장 8∙15 남북학생회담 통일선봉대 출정 1989년 제 20대 혁신총학생회 사회부장, 농촌활동 준비위원장 1989년 8월 병악화로 휴학 1990년 9월 15일 운명 |40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7년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여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청주사대 수호투 쟁에 앞장서 싸우다 유기정학을 받은 이후 학교와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 갔다.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의 동지는 성실하면서도 소박한 생활가운데서 과 내에서의 많은 동료 및 선후배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88년 흥사단 아카데미 회 장과 동아리 연합회 학술부 차장을 지내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동지는 그러 한 신뢰를 바탕으로 ’88년 통일선봉대에 참가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고, ’89년 제20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집회들을 선두에서 이끌며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활동했다. 학원자주화투쟁 기간에 7일간의 노천단식 중 몸에 이상을 느꼈으나, 단식을 끝 낸 후에야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을 받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농 활위원장으로 일할 때 동지의 병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쓰러질 때까지 약을 먹 어가며 농활을 지도했다는 데서도 동지의 책임감은 여실히 나타난다. 결국 동지는 ’89년 2학기 투병생활에 들어가 ’89년 9월 15일 동료들의 비통함 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조국과민중을사랑하는마음이너무나도크기에한치도물러설수없는애국의길에서주 저함없이달려온전사김기훈열사! 시간이흘러9년이지난오늘에도열사는예전과같은열정으로우리들의곁에서있습니다. 애국의한길에서잠시라도주춤하고나약해질때, 미제와김대중정권의폭압아래힘겨워눈 물흘릴때, 김기훈열사는늘원칙과정도로서산자들을채찍질하고있습니다. 우리결코잊지맙시다. 열사는언제나투쟁의중심에있음을…’ - 1999년9월15일추모제자료집중에서- 끝내살리라 |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