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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전 (당시25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3년 4월 17일 경기도 화성 출생 1982년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1987년 12월 민중후보 선거대책위 선전국장 역임 1988년 3월 민중정당결성 학생추진위 선전국장 역임 1988년 3월 숭실대학교 제20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당선 1988년 6월 4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친 후 온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분신 1988년 6월 5일 전신 80% 3도 화상으로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 1988년 6월 6일 12시 23분 운명 |37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80년 누이의 가슴팍을 도려내고 죄없는 민중을 난자한 학살원흉이 대통령으 로 , 국회의원으로 권좌에 앉아, 그 피묻은 손으로‘민주’를 떠드는 비극적인 땅! ‘명예회복-보상’운운하며 또다시 광주민중항쟁을 능욕하는 학살원흉 노태우와 ‘진상조사는 하되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보수야당이 피의 광주를 놓고 벌이는 정치야합과 88올림픽의 휘황찬란한 팡파레 속에‘환경미화’란 미명으로 이 땅 민중들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88년 당시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동지는 광주학살 진상 규명과 분단올림픽 반대, 공동올림픽 쟁취, 6∙10 남북학생회담을 쟁취하기 위 해 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던 ’88년 6월, 민중해방의 신새벽을 앞당기기 위해 싸웠던 동지는 숭실대 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제 한 몸 불살라 학살원흉에게 민주의불벼락을 내렸던 것이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라는 절규로 우리 모 두의 투쟁을 촉구하며 ’88년 6월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끝내살리라 |373| 동화() 당신들이제게돌아오지않을것을 아는까닭에 저는당신들의코끝이나간질이는 가을꽃일수없습니다 제게돌아오지못할것을아는까닭에 저는풍성한가을에도뜨거운여름에도 따사로운봄에도필수없습니다 그러나떠나지못하는건 그래도꽃을피워야하는건 내발의사슬때문이지요 겨울꽃이되어버린지금 피기도전에시들지도모릅니다 그러나진정한향기를위해내이름은라합니다 세찬눈보라만이몰아치는 당신들의나라에서 그래도몸을비틀며피어나는꽃입니다 - 유고시‘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