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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웅 (당시52세) 1940년 전북 이리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4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1982년 군산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중 이른바‘오송회’사건에 연루, 5년동안 옥중생활 1985년 첫시집「대밭」출간 1987년 군산 서흥중에 복직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두번째 시집「목숨을 걸고」출간 1992년 초대 교육문예창작회장 세번째 시집「수선」출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92년 12월 22일 오후 4시 45분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 |36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71년 원광종합여고에 첫 발을 딛은 동지는 ’76년부터 ’82년까지 군산 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 이른바‘오송회’사건에 연루되어, 교사직을 파면당하고 ’87 년까지 6년동안 긴 수형생활을 하였다. 출감후 ’88년 9월 특채로 군산 소흥중학 교에 복직하여 교사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이것도 잠시뿐 군산옥구교사협의회와 전교조 활동을 통한 민족민주인간화의‘참교육’을 몸소 실천하다 ’89년 8월 해직 의 아픔을 다시 맞게 된다. ’74년‘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던 동지는 ’85년 첫시집 <대 발>에 이어 ’89년에는 <목숨을 걸고>를 내는 등 해직 이후 왕성한 시작활동을 펴 왔으며, 줄곧 교육문예 창작회 회장 및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동지가 위암3기로 판정을 받았을 때는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악화된 상 태였다. 이후 하동 요양원과 단식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52세의 일기로 운명 하였다. “3일굶어도웃을착한이, 선하나강건한‘지사’의모습을잃지않았던분이었습니다.” “오랜투옥과해직생활을겪는동안지병이악화된것으로이광웅시인의죽음은명백히‘시 대적타살’일수밖에없습니다.” “소녀같은눈빛을지니신분이었지요. 자유롭고도따뜻한심성으로우리를보듬어주었습니 다. 인연을맺어온주변사람들은큰슬픔에정신이아득해질뿐입니다.” - 노동자신문에실린이항근장례위원장의대당기사중에서- 끝내살리라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