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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수(당시30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1년 강원도 삼척군 출생 1982년 강국택시에서 3년간 근무 1986년 인천 공성교통에 입사 1991년 6월 14일 지도부 연행에 항의, 차량시위에 적극 참가 1991년 6월 15일 지도부 석방을 요구하며 분신 1991년 6월 24일 10시 28분 운명 |34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강원도 삼척군 하장면 추동리에서 태어나, ’77년 세일포장에서 13만원 의 임금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20살 때 인천에 상경하여 계산동 주차장에 취직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자취생 활을 시작하였고, ’82년 부평 한시택시인 강국택시에 입사, 3년간 근무하다가 취 업을 못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그 자리를 물려주고 강국택시를 퇴사했다. 또 ’86 년 3월 공성교통에 입사하여 거의 만근을 할 만큼 성실히 근무생활을 하였고, 계 산동 노틀담 수녀원에서 벌이고 있는 장애자 돕기 후원회원으로 없는 살림에 매 달 3만원씩 후원회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91년 3월 노조 대의원으로 피선되어 노동조합집행부를 도와 모든 조합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4일 차량시위 당시 경찰들의 폭력적인 차량견인에 항의 하여 선두에 서서 싸웠다. 조합원 동지 210여명이 연행된 이후 회사로 돌아와 “이 ××들! 해도 너무 한다. 우리가 차를 세워두어야 하는 거야? 임금교섭 도중 에 지부장을 끌고 가고 이건 말도 안되는 공권력개입이다. 혼자만 벌어먹고 살려 고 하면 하루 갈 것이 일주일 간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밤새 북을 치며 노동가를 부르다가 ’91년 6월 15일 6시 20분경 동지는 사업주의 비열하고, 무책임한 임금협상에 온몸으로 항거하며 분신하여, 가족과 동지들의 안타까운 염원을 뒤로하고 같은 해 6월 24일 운명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이사장이 잠적하였고, 이에 가족들은 보름이 넘는 농성과 노조 집행부의 노력으로 사측의 잘못을 시인하게 한 후 장례를 치루었다. 끝내살리라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