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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환 (당시53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38년 12월 11일 출생 1977년 12월 22일 원진레이온 입사(원액2과 근무) 1990년 9월 퇴사후 1차 쓰러져 말을 더듬기 시작 1990년 11월 26일 사당의원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의증 및 고혈압으로 진단받음 1990년 11월 27일 노동부와 회사측 요양신청 거부 19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 접수 통보 받음 1991년 1월 5일 오후 1시경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밤 10시 30분경에 운명 |33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7년 원진레이온에 입사하여 갓 태어난 딸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 였던 성실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입사 후 차츰 몸이 쇠약해지더니 급기야 CS2 중독 초기증상인 두통과 소화불량, 손발이 저리는 등 여러 증상으로 ’83년 원진레이온에서 퇴사하였다. 그 후 건물 경비 등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던 중 두통, 마비증세에 시달리다 ’89년 쓰 러져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하고,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문제가 널리 알려지기 시 작하자 자신의 병이 원진레이온 근무시절 생긴 것이 아닐까하여 ’90년 10월 진료 를 받아본 결과‘이황화탄소 중독의증 및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동지는 자기의 병이 직업병임을 알고 원진레이온 회사 측에 산 재요양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이황화탄소 중독의증 및 고혈압’ 이라는 진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지가 근무하던 원액 2과가 유해부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대로 요양신청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동지는 노동부 에도 산재요양신청 허가를 요구했으나 노동부는 회사를 두둔하며, 접수조차 거 부하였다.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인 싸움으로 마침내 ’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 터 요양신청서를 접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바로 그날 운명하였다. ‘우리의싸움은끝나지않았습니다! 김봉환동지는죽었지만(주)원진레이온직업병투쟁은끝나지않았습니다. 아직도(주)원진 레이온의많은노동자들이산업재해와직업병의고통에시달리고있습니다. 회사측은노동자 의 목숨을 돈벌이의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은 당신 들이 세상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고 보라. 온 지역주민들에게 독가스를 먹이고, 노동자들을직업병으로죽이는직업병제조공장을계속하는한, 우리는온국민의단결된힘으 로산업재해, 직업병없는세상을위해싸워나갈것이다”고… 오늘의이억울한죽음을내일의힘찬투쟁으로승화시킵시다.’ - 원진레이온직업병노동자고김봉환씨장례식자료집중에서- 끝내살리라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