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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당시28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1년 8월 출생 1978년 동계중학교 졸업 1979년 서울 성동구 시티즌 시계 입사 1985년 인천 경동산업 입사 1989년 4월 임금인상 대책위원으로 활동 1989년 5월 ‘디딤돌’친목회에서 적극적 활동 1989년 8월 31일~9월 4일 ‘디딤돌’친목회 임원에 대한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여 농성투쟁 19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한 뒤 불붙은 몸으로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라고 절규 1989년 9월 15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 |31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5년경에 인천 서구 경동산업에 입사하여 일하면서‘디딤돌’이라는 노동자 친목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경동산업은 ’70년대 이래 세계최대 주방용품 생산업체로 급성장하였으나, 손 가락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재사고가 많고 노동조건이 열악하였다. ’84 년 ’85년 두 차례의 민주노조 건설 시도가 있었으나 당시 안기부 직원이 노무과 에 상주하고 노동법을 무시한 해고와 구사대 폭력으로 사측은 이러한 시도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국면에서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에 걸쳐 사측의 노동법을 무시한 해고와 부서 이동, 일방적인 단체협약 체계 관행에 항의하여 완 강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사측은 경찰을 동원하여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8 명을 구속하고 500여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였다. 이에 ’89년 8월 27일 어용노조에 맞서 디딤돌은 인천대에서 경동가족 해고자 돕기‘경동가족 한마당 일일찻집’을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사측은 이 행 사가 회사비방, 노조집행부 불신, 해고자복직등 정상조업을 방해했다며 디딤돌 회장과 부회장, 총무 등을 징계하였다. 해고자들은 ’89년 8월 31일부터 부당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사측은 농성자들의 대화요구를 거부하고 매일같이 구사대 200여명을 동원하여 폭력을 자행하고 해고자들의 가족까지 짓밟았다. 해고자 3명이 부평에서 연행당 한 상황에서 9월 4일 3시경 사측은 경찰과 200여명의 구사대를 동원 강제 해산 시키고자 하였다. 강현중 동지가 나와 같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오른 편에 싸우다 감옥에 갈 사람은 왼편에 서라며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의하자 동 지는 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절을 하고 어머니의 노래, 애 국가를 다함께 불렀다. 동지와 김종하 동지 등 3명은 함께 본관3층 징계사건의 주모자인 이사실에 들 어가 마지막 담판을 하려하였다. 하지만, 징계를 받지 않으면 구속시켜버리겠다 는 뻔뻔스런 대답에 동지는 이사를 잡고 불을 켜 분신 항거하였다. 한강성심병원 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동지는 9월 15일 오전 9시 반경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