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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중(당시26세) 부여 선산에 안장 1963년 4월 27일 충북 음성 출생 1981년 10월 5일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중퇴 1987년 3월 초 인천 경동산업 입사 1988년 5월 4일 ‘디딤돌’이라는 친목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 1989년 8월 17일~30일 경동 노조 민주화 투쟁 파업에 참여 1989년 8월 31일~9월 4일 회사의 부당징계조치에 항의농성 19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한 뒤 불붙은 몸으로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노동자는 승리합니다”라고 절규 1989년 9월 9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 |31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7년 3월 초순경 인천 서구 경동산업에 재 입사하여 일하면서‘디딤 돌’이라는 노동자 친목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경동산업은 ’70년대 이래 세계최대 주방용품 생산업체로 급성장하였으나, 손 가락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재사고가 많고 노동조건이 열악하였다. ’84 년 ’85년 두 차례의 민주노조 건설 시도가 있었으나 당시 안기부 직원이 노무과 에 상주하고 노동법을 무시한 해고와 구사대 폭력으로 사측은 이러한 시도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국면에서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에 걸쳐 사측의 노동법을 무시한 해고와 부서 이동, 일방적인 단체협약 체계 관행에 항의하여 완 강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사측은 경찰을 동원하여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8 명을 구속하고 500여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였다. 이에 ’89년 8월 27일 어용노조에 맞서 디딤돌은 인천대에서 경동가족 해고자 돕기‘경동가족 한마당 일일찻집’을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사측은 이 행 사가 회사비방, 노조집행부 불신, 해고자복직등 정상조업을 방해했다며 디딤돌 회장인 동지와 부회장, 총무등을 징계하였다. 해고자들은 ’89년 8월 31일부터 부당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사측은 농성자들의 대화요구를 거부하고 매일같이 구사대 200여명을 동원하여 폭력을 자행하고 해고자들의 가족까지 짓밟았다. 해고자 3명이 부평에서 연행당 한 상황에서 9월 4일 3시경 사측은 경찰과 200여명의 구사대를 동원 강제 해산 시키고자 하였다. 동지는 나와 같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오른편에 싸 우다 감옥에 갈 사람은 왼편에 서라며 노조간부에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를 통해 혈서로 경고를 쓰고 소지품을 한곳에 모아 불에 때웠다. 공권력과 구사대는 계속 농성자들을 몰아세웠다. 동지와 김종하 동지 등 3명은 함께 본관3층 징계사건의 주모자인 이사실에 들어가 마지막 담판을 하려하였다. 하지만, 징계를 받지 않으 면 구속시켜버리겠다는 뻔뻔스런 대답에 동지들은 신나를 뿌린뒤 할복, 분신 항 거하였다.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동지는 9월 9일 오후 3시 반경 운명하였다. 순수한것을거짓으로왜곡하고자본가즉돈많은사람들이존재하기위하여우리노동자들 의뼈와살을갉아먹고있습니다. 자본가들의사상, 자기들의체면은중요하고우리조합원들 의생명은아무런생각없이앗아가벼렸습니다. 그래서이러한세상자본가의세상이싫어죽 음택합니다. 부디조합원여러분의세상노동자들의세상이오길기원하면서이만줄입니다. - 유언- 끝내살리라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