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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조 (나이미상) 1989년 7월 13일 남성 홍진 노동자로‘무노동무임금 분쇄 결의대회’참가로 불구속 1989년 8월 2일 구사대 폭력으로 구타당하여 실신(2차례 뇌수술) 1989년 8월 5일 오후 10시 40분 운명 |30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남성흥진 노조는 100여일간에 걸쳐 파업투쟁을 벌여왔다. 파업초기에 회사 측 은‘파업을 풀고 정상운행을 하면서 노사협의를 하자’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회사 관리자인 전무는 5월 9일부터 협상을 회피하기 위하여 회사에 나오지 않기 시작하며‘정상운행을 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주장만 해왔고 27일부 터는 구사대 임무를 띤 조합원들이 선운행 후타협(회사의 주장과 일치) 주장을 앞세우며 차량을 탈취하고 이를 막는 조합원들에게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며칠동안 운행을 하던 이들은‘많은 조합원들이 선운행 후타협을 주장한다’며 총회로 모일 것을 요구하고 총회결의에 따른다고 약속을 하였으나 82대 221로 부결되자 약속을 저버리고 탈취한 차량들을 그대로 운행하는 추태를 보여왔다. 이들은 이후 6월 10일, 사업장 옆 공터에 천막을 치고 공공연히 배차를 시작하 고 시비를 걸어오며 톱과 칼을 들고 위해하자 이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많은 조합 원들이 또 다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 난동의 주동자들은 연 행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왔다. 또한 7월 30일에는 50여명의 무리를 만들어 조 합사무실을 폭력으로 점거하였고 8월 2일, ‘구속된 놈들은 죄 값을 치러야 마땅 하다’는 주장을 스피커로 떠들어대며 사업장 한쪽 구석에 천막을 치고 노숙하고 있는 조합 집행부 및 조합원과 그 부인들에게 사람으로선 할 수 없는 갖은 욕설 을 퍼부으며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이에 동요하지 않자 전등을 절단 해 소등을 시켜버렸다. 이에 동지가 단신으로 회사 건물 전등을 켜라고 항의하자 구사대들은 각목과 쇠파이를 들고 몰려나와 동지를 무차별 폭행하여 실신케 하였다. 동지는 2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89년 8월 5일 운명 하고 말았다. 끝내살리라 |309|